이경은

해방이란 구속이나 억압, 부담 따위에서 벗어나게 함이라는 뜻의 명사이다. 해방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주변 환경에 압도될 때, 스스로가 작아 보일 때, 자력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나를 둘러쌀 때? 자연은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힘으로 나를 자유롭게 했다. 방해받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바람이 불고 파도가 치는 것은 당연한 일. 시간들이 쌓여 나무가 커진 것 역시 당연하다. 인간이 관여할 수 없는 자연의 힘을 느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그 사이에 내가 있을 뿐이다. 자연과 나를 일치시키자, 묘한 편안함이 느껴졌다. 해방은 그렇게 시작된다.

불안, 고통, 슬픔, 행복과 같은 감정, 미래에 일어날 일들, 앞으로의 선택들, 이미 지나버린 과거의 일같이 내가 바꿀 수 없는 운명처럼 느껴지는 것들이 있었다. 자연에서 포착한 자연의 힘으로부터 나는 필연적인 감정과 일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이 경험을 ‘나로부터의 해방’이라고 이름 붙였다.


타지에서의 경험이 있었다. 후지산 아래로 떠난 여행에서 만난 원시림과 끝없는 초록, 호수, 그리고 발에 느껴지는 모래 위에서 어떤 쾌감을 느꼈다. 자연 속에서 느낀 감정은 해방과 자연과의 일체감이었다.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한 감정들이 소용돌이치며, 그 순간순간을 기록하려고 애썼다. 줄곧 찾던 이상향에 도달한 기분이었다. ‘해방의 공간’이라고 이름 붙인 그곳을 회화를 통해 구현하고 있다. 이곳은 실제로 존재하는 공간들이며, 나에게는 후지산 아래였지만 다른 이에게는 다른 공간일 수 있다. 해방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공간들을 찾아내 그 곳을 다시 그려낸다.

자연의 풍경은 계속해서 변화하고 우리는 그것을 느낄 수 있다. 피부에 스치는 바람, 눈으로 들어오는 빛, 움직이는 구름. 그 과정에서 오감으로 느낀 격동적인 감정이 맞물리며 캔버스 위에서는 다양한 변화와 시도가 일어난다. 순식간에 불어오는 바람과 휩쓸리는 나뭇가지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것을 회화로 구현하기 위해, 겹침과 지우기를 반복한다. 작품의 빠른 스트로크는 내가 자연물 속에서 느낀 감흥의 찰나를 나타내기 위한 수단이다. ‘찰나’가 중요하다. 감각들의 찰나에서 필연적인 힘을 느꼈기 때문이다.


산, 나무, 풀, 나뭇가지 등이 어지러이 뒤섞인 해방의 공간이 있다. 낯선 타지에 향수를 느낀다. 기억과 감각에 의존한 공간은 추상화되며 뭉개진 형태로 드러난다.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전달하는 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해방의 감각만이 중요할 뿐이다.




학력

2022. 08 홍익대학교 회화과/금속 조형디자인과 졸업


단체전

2022. 06 인천 노메이크업 스튜디오, 오픈 전 <NO>展

2022. 08 마포문화재단, ‘청년예술가 지원’ 선정 사업 <요정빵의 맛>


아트 페어

2022. 05 예술의 전당, 청년미술상점


개인전

2022. 08 갤러리 지하, 개인전 <무거운 이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