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설하
oil and spray on canvas
45 x 38cm
2022
작가노트
<시각의 교란>
나의 작업은 눈으로 무엇인가를 응시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에서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즉 무분별한 이미지를 “차단” 하는 셈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하여 자신을 인지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그 경험은 무섭고 두려운 것이 아닌 새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어진 상태에서 눈앞에 보이는 대상, 풍경, 더 나아가 자신조차 새롭게 느껴졌으며 무엇인지에 대해 상상하게 되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외부대상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업을 한다.
에드문트 후설(Edmund.Husserl,1859-1938)은 이러한 과정을 현상학적 환원을 통한 판단중지라고 말한다. 후설은 외부의 대상을 바라보았을 때 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속성을 지향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지향성은 대상의 의미를 인식하게 되므로 순수한 현상, 즉 실체를 바라보지 못한다고 이야기 한다. 후설은 대상의 본래적인 모습, 순수한 현상에 도달하기 위해서 판단중지가 필요하다고 정의 한다. 판단중지란 일상적인 관점, 즉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는 현상을 멈추고 순수한 체험과 의식을 획득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는 내가 어떤 사물을 인지하기 직전의 순간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후설의 판단중지의 개념을 참고하여 ‘외부 대상을 인지하기 전 판단정지의 상황을 작업에 담고 있다.
인간은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탈피하여 새로운 무엇인가를 원하는 무의식적 욕구와 일률적인 것을 다르게 보고 해석하려는 강한 지적 욕망을 갖고 있다. 이것은 대상에 대한 자동적으로 인식과 인지에 대해 판단정지를 하고 무한하게 상상을 하고자 하는 나의 욕망이기도 하다.
시각의 교란 시리즈는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이미지들의 찌꺼기이다. 작업은 이미지들의 잔상, 흩어지듯 혹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형상들을 표현한다. 나는 인지의 오류를 위해 외부대상을 나의 방식대로 배열하거나 섞으면서 모호함을 형상한다. 작업은 기름으로 인해 물감이 흐르거나 투명도를 주어 대상의 인식을 방해하는 의도적인 가림으로 표현된다. 검은 선들은 지각작용을 위한 실마리 같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나는 예측 가능할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그 지점을 표현한다. 그것은 지각작용으로 인해 정립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이기도 하며, 상상을 자극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눈은 외부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중요한 신체기관이다. 나는 눈을 가려 또 다른 감각을 자극하기보다 시각의 교란으로 통해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오류를 느꼈을 때 지각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왜냐면 인간의 사고는 미끄러지는 듯 지속적으로 사고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류를 통해 새로운 지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지각과 구별되는 상상의식의 특징을 찾아내어 그것을 의식의 초월성과 자유, 자발성, 능동성에 연결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사르트르에게서 상상력은 '의식에 덧붙여진 쓸데없는 기능'이라는 전통적 견해로부터 벗어나 중요하고도 위대한 기능을 가진 의식으로 되살아난다. 사르트르가 발견한 위대한 기능의 의식인 상상력은 새로움을 추구하게 한다. 나의 작업에서 궁극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순수한 지각상태로 접근하게 된다.
예를 들어 판단정지가 된 상황이후, 도달한 낯선 세계에서 물병을 접했을 때 물을 담는 병이 아닌, 거울 혹은 세면대로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 방법은 자동기술법과 유사하기도 하다.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이성에 의한 일체의 통제 없이, 또는 미학적, 윤리적인 일체의 선입견 없이 행하는 사고의 진실을 기록하는 것" 이라고 되어 있다. 즉 습관적 기법이 고정관념, 이성 등의 영향을 배제하고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리는 것을 말한다. 낯선 세계는 고정관념이 없고 이성적 지각이 불가능한 장소로 비유할 수 있으며, 그 세계에서 보이는 것을 마음껏 상상하는 것은 자동기술법으로 비유할 수 있다.
나에게 있어 외부대상을 가리는 것은 경험과 집단으로부터 배운 지식으로 통한 의식의 거부, 새로운 것, 낯선 세계의 도달, 나아가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창조적인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은 고정관념을 탈피, 스스로에게 내재된 새로운 지각을 경험할 수 있다. 나는 일련의 과정과 시도를 의도적인 가림으로 통해 판단정지의 상황을 제시하고 그 너머의 것들을 상상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나의 작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판단정지와 상상력은 순수한 지각상태로 도달할 수 있는 행위이며, 시각을 교란시키는 ‘의도적인 가림’ 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비교적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실재하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으며, 아름다움은 오직 상상적인 것에만 적용될 수 있을 가치"라고 확언했다. 나의 예술적 가치는 보여 지는 대상의 대한 자동적 인지를 배제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낯설음을 통한 순수한 지각상태 즉 상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개인전
2022 <시각의 교란>(갤러리도스,서울) 5월 예정
2022 <판단정지>,(언더스탠드에비뉴,서울)
2021 <가려진 부분은 제외하고 감상해주세요>, (갤러리 아미디 신촌,서울)
2020 <shadow, curtain>, (중간지점,서울)
2019 <자가 치유>(미엘,서울)
2018 <아현>,(미엘,서울)
2016 <안설하 개인전>, (부천시청,부천)
단체전
2022 <ART IN METAVERSE>,(언더스탠드에비뉴,서울)
2022 <무엇!?>,(미엘,서울)
2021<SO OOO>,(studio h,판교)
2020 <The Value 국제전>, (CICA 미술관,김포)
<K.A.K 3인전>,(미엘,서울)
공연
2015 <드라마 회화작업 협찬>,(mbc,kbs,서울)
2007 <사랑에 관한 다섯가지 소묘>,(극난 나비,창원)
2006 <일본 삿포로 단편 영화제 초청>,(삿포로,일본)
안설하
oil and spray on canvas
45 x 38cm
2022
작가노트
<시각의 교란>
나의 작업은 눈으로 무엇인가를 응시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에서부터 작업이 시작된다. 즉 무분별한 이미지를 “차단” 하는 셈이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하여 자신을 인지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 그 경험은 무섭고 두려운 것이 아닌 새로움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런 사전지식이 없어진 상태에서 눈앞에 보이는 대상, 풍경, 더 나아가 자신조차 새롭게 느껴졌으며 무엇인지에 대해 상상하게 되었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멈추고 외부대상에 대한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업을 한다.
에드문트 후설(Edmund.Husserl,1859-1938)은 이러한 과정을 현상학적 환원을 통한 판단중지라고 말한다. 후설은 외부의 대상을 바라보았을 때 의식적으로 떠오르는 속성을 지향성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런 지향성은 대상의 의미를 인식하게 되므로 순수한 현상, 즉 실체를 바라보지 못한다고 이야기 한다. 후설은 대상의 본래적인 모습, 순수한 현상에 도달하기 위해서 판단중지가 필요하다고 정의 한다. 판단중지란 일상적인 관점, 즉 자연스럽게 떠올려지는 현상을 멈추고 순수한 체험과 의식을 획득하는 방법이라고 한다. 이는 내가 어떤 사물을 인지하기 직전의 순간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나는 이러한 후설의 판단중지의 개념을 참고하여 ‘외부 대상을 인지하기 전 판단정지의 상황을 작업에 담고 있다.
인간은 일상적인 것으로부터 탈피하여 새로운 무엇인가를 원하는 무의식적 욕구와 일률적인 것을 다르게 보고 해석하려는 강한 지적 욕망을 갖고 있다. 이것은 대상에 대한 자동적으로 인식과 인지에 대해 판단정지를 하고 무한하게 상상을 하고자 하는 나의 욕망이기도 하다.
시각의 교란 시리즈는 일상에서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이미지들의 찌꺼기이다. 작업은 이미지들의 잔상, 흩어지듯 혹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형상들을 표현한다. 나는 인지의 오류를 위해 외부대상을 나의 방식대로 배열하거나 섞으면서 모호함을 형상한다. 작업은 기름으로 인해 물감이 흐르거나 투명도를 주어 대상의 인식을 방해하는 의도적인 가림으로 표현된다. 검은 선들은 지각작용을 위한 실마리 같지만 명확하지는 않다, 나는 예측 가능할 것 같지만 알 수 없는 그 지점을 표현한다. 그것은 지각작용으로 인해 정립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구이기도 하며, 상상을 자극하는 요소이기도 하다. 눈은 외부대상을 직접적으로 파악하는 중요한 신체기관이다. 나는 눈을 가려 또 다른 감각을 자극하기보다 시각의 교란으로 통해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오류를 느꼈을 때 지각을 하지 않는 게 아니다. 왜냐면 인간의 사고는 미끄러지는 듯 지속적으로 사고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오류를 통해 새로운 지각을 제시하고자 한다.
장 폴 사르트르(Jean-Paul Sartre)는 지각과 구별되는 상상의식의 특징을 찾아내어 그것을 의식의 초월성과 자유, 자발성, 능동성에 연결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사르트르에게서 상상력은 '의식에 덧붙여진 쓸데없는 기능'이라는 전통적 견해로부터 벗어나 중요하고도 위대한 기능을 가진 의식으로 되살아난다. 사르트르가 발견한 위대한 기능의 의식인 상상력은 새로움을 추구하게 한다. 나의 작업에서 궁극적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순수한 지각상태로 접근하게 된다.
예를 들어 판단정지가 된 상황이후, 도달한 낯선 세계에서 물병을 접했을 때 물을 담는 병이 아닌, 거울 혹은 세면대로 상상할 수 있다. 이러한 사고 방법은 자동기술법과 유사하기도 하다. "<초현실주의 선언>에서 이성에 의한 일체의 통제 없이, 또는 미학적, 윤리적인 일체의 선입견 없이 행하는 사고의 진실을 기록하는 것" 이라고 되어 있다. 즉 습관적 기법이 고정관념, 이성 등의 영향을 배제하고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리는 것을 말한다. 낯선 세계는 고정관념이 없고 이성적 지각이 불가능한 장소로 비유할 수 있으며, 그 세계에서 보이는 것을 마음껏 상상하는 것은 자동기술법으로 비유할 수 있다.
나에게 있어 외부대상을 가리는 것은 경험과 집단으로부터 배운 지식으로 통한 의식의 거부, 새로운 것, 낯선 세계의 도달, 나아가 마음껏 상상할 수 있는 창조적인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과정은 고정관념을 탈피, 스스로에게 내재된 새로운 지각을 경험할 수 있다. 나는 일련의 과정과 시도를 의도적인 가림으로 통해 판단정지의 상황을 제시하고 그 너머의 것들을 상상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나의 작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판단정지와 상상력은 순수한 지각상태로 도달할 수 있는 행위이며, 시각을 교란시키는 ‘의도적인 가림’ 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비교적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실재하는 것은 결코 아름답지 않으며, 아름다움은 오직 상상적인 것에만 적용될 수 있을 가치"라고 확언했다. 나의 예술적 가치는 보여 지는 대상의 대한 자동적 인지를 배제하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낯설음을 통한 순수한 지각상태 즉 상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개인전
2022 <시각의 교란>(갤러리도스,서울) 5월 예정
2022 <판단정지>,(언더스탠드에비뉴,서울)
2021 <가려진 부분은 제외하고 감상해주세요>, (갤러리 아미디 신촌,서울)
2020 <shadow, curtain>, (중간지점,서울)
2019 <자가 치유>(미엘,서울)
2018 <아현>,(미엘,서울)
2016 <안설하 개인전>, (부천시청,부천)
단체전
2022 <ART IN METAVERSE>,(언더스탠드에비뉴,서울)
2022 <무엇!?>,(미엘,서울)
2021<SO OOO>,(studio h,판교)
2020 <The Value 국제전>, (CICA 미술관,김포)
<K.A.K 3인전>,(미엘,서울)
공연
2015 <드라마 회화작업 협찬>,(mbc,kbs,서울)
2007 <사랑에 관한 다섯가지 소묘>,(극난 나비,창원)
2006 <일본 삿포로 단편 영화제 초청>,(삿포로,일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