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의 겉, 밖의 안
이렇게 생각해보면 어떨까. 형상은 무에서 유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에서 무를 만들어내는 것일지 모른다. 어떤 형상들은 구체적인 사실의 형태를 지워나가거나 흐릿하게 만들어 모호함을 만들어낸다. 분명한 대상에서 벗어나 그것을 해체하거나 빗나가게 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무의 공간을 감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과정은 다시 유의 공간으로 이어진다. 형태를 완전히 지우지 않고 희미한 흔적이나 윤곽을 드러내는 것에 집중함으로써 부재와 존재 사이의 여백을 형성한다. 그 빈 자리 안에 새로운 의미가 싹트며 풍부한 해석의 자리가 마련되는 것이다.
윤혜진은 죽음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하여 그것이 남긴 흔적과 기억의 장면을 묘사한다. 죽음은 공허하다. 살아남은 자는 그 텅 빈 공간을 외면할 수 없기에, 과거의 장면과 기억을 끄집어내어 끊어진 이야기를 재구성하려 한다. "올리브유 병은 절벽처럼 꺾인 면으로, 척추는 곡선으로, 병자의 조끼는 호수를 호출"하는 이 형상의 재구성 과정에서, 그는 한때 선명하게 존재하던 대상과 사건을 닮은 사물과 색으로 치환하여 새로운 서사를 구성하고, 이를 통해 현재와 과거를 겹쳐 보며 시간성을 넘어서는 이미지에 닿는다.
색의 층이 쌓이며 만들어내는 중첩된 깊이는 공간감을 부여하면서도 동시에 평면적인 모호함을 창출한다. 이로 인해 특정한 풍경은 해체되고, 분위기는 강조되어 더 근원적인 마음의 동요를 불러일으킨다. 죽음과 생이 서로 얽혀 만들어진 풍경이 고요하다.
이시원은 온전한 한 덩이로부터 시작하여 나무를 조각한다. 그가 조각한다는 것은, 마치 어떤 얼굴에 닿기 위해 ’닦아나가는 것‘과 같다. 그는 전기톱으로 나무를 깎아나가며 나뭇결, 옹이, 썩은 부분과 같은 내부의 흔적을 가감없이 드러내어 외부의 모양과 조화로운 하나의 형상을 만들어낸다. 깨끗한 선으로 그려진 조형의 미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결점으로 채워진 안의 이야기를 밖으로 가져와 다시 하나의 조각으로서 마주하도록 하여 불완전하기에 온전한 이야기를 전한다.
그의 조각은 단단하면서도 부드러운 느낌이 공존한다. 나무가 지닌 고유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조각들은 완성된 것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자라거나 변화하고 있는 과정의 일부로서 존재하는 듯 보인다. 이러한 가능성의 조형미는 공간과 상호작용을 이룬다.
프로젝티파이의 전시 ≪속의 겉, 밖의 안≫의 두 작가는 형상이 ’무엇처럼 보이지만,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는’ 어떠한 경계에 존재한다는 점을 표현한다. 그 미묘한 경계에 시선을 두며 그것이 갖는 의미가 고정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형상들은 끊임없이 변형되고 재구성되는 과정 속에서 겉과 속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요소로서 존재하며 우리의 존재를 재해석하는 의미있는 통로가 됨을 일깨운다.
속의 겉, 밖의 안
The Dialogues of Form and Essence
윤혜진 Yoon Hyejin
이시원 Lee Siwon
글 이민진
기획 프로젝티파이
2024.11.08-12.07
12:00-18:00 (Mon/Sun off)
프로젝티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