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혼자>


최우영 | 윤주은


2024.2.16 - 3.9

13:00-19:00 ( 일/월 휴무 )

연세로 2마길 12 2층


글 이민진



  이제 우리는 모두 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이들과 관계를 맺고 대화를 이어나가고 마음을 나누는 것이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생기는 불안을 목도리처럼 단단히 두르고 밖을 나서는 사람이 있다. 문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우리는 타인과 마주한다. 타인은 사회적인 틀로 스스로를 무장한 자이다. 내 존재가 나만으로써 정의되지 않을 때, 내가 원한 적 없는 맥락으로 나를 정리하여야 할 때 혼란은 부지불식 간에 다가오기 마련이다. 프로젝티파이의 《함께하는 혼자》 전시의 두 작가는 타인과 관계하며 맞닿는 불안을 각자의 방식으로 말한다. 함께이기에 혼자를 말하는 자들의 이야기이다.


  최우영은 관계에서 마주하는 불안에 집중한다. 그는 타인과 관계하고 그로부터 멀어진다. 멀어져 다시 관계하는 자이다. 전자의 관계가 사회 안에서 타인과 나 사이에 불가항력으로 주어진 것이라면 후자의 관계는 내가 나의 방식으로 설정한 것이다. 그는 선택할 수 없는 불안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선택하지 않는 것을 선택한다. 그는 마주하지 않는다. 거리를 두는 존재, 또렷이 서 있기보다는 흐릿한 것을 택하여 다만 누군가로서 존재하고자 하는 작가는 검은 점으로 가려진 얼굴을 통해 오히려 선명한 익명성의 이미지를 드러낸다.

 검은 점을 가진 얼굴은 타인과 함께하여 서사가 생기는 카페, 대중교통 그리고 길거리 등의 공간들을 지나거나 혼자 책상에 기대어 누워 있기도 하며 스스로 익명이 되는 것을 택한다. 함께하는 공간에서 혼자가 되길 자처하여 불안을 견디는 것이다 


  윤주은의 물음은 ‘나는 어떤 형태로 존재하는가’로 시작한다.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은 나와 사람이나 사물 사이에서 정의되는 일이다. 타인과의 관계가 없다면 내가 나일 수 있을까.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의가 나의 외부에 존재할 때, 즉 사회적 가치에 있을 때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 그의 불안감은 스스로를 지켜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작가는 육체를 보존하여 사회에 물리적으로 연결된 나를 확립하고 자신을 보호하고자 한다.

  그의 이번 작업은 신체를 말하는 일에 집중한다. 매끈한 얼굴의 면에 패이고 거칠어진 부분들은 관계에 의한 상처를 드러낸다. 그 얼굴에 눈을 맞추다 보면 나의 내면에 틈이 생긴 부분과 마주하게 된다. 선과 곡선의 형태를 담은 오브제 또한 신체의 부분을 형상화한다. 스스로를 감싸거나 안은 모습을 곡선의 부피감으로 표현한 작업으로 작가는 내면의 불안을 부드럽게 만지는 것이다.


  전시는 당신의 불안은 어떠한가를 묻는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이 불안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자신에게 묻는 것이다. 불안은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다가가고자 하는 마음의 징표이다. 불안하다는 것은 사실 존재의 문제 제기이기에 작가는 그에 대한 자신의 답을 찾아나선다. 그러니까 불안하다는 것을 적극적으로 세상을, 세상 안에 존재하는 나를 받아들이고자 하는 마음의 발로로 보자. 당신의 불안에 안부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