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안녕의 자리
돌은 의도가 없다. 그것이 우리가 쉽게 마음이 가는 이유이다. 돌은 그 형태와 무게에 어떠한 목적이 없으며, 다만 한 손에 잡히는 자연일 뿐이다. 자연은 아주 크고 드넓은 것-세상을 이루는 거의 모든 것-이지만 우리가 자연이라는 존재를 진실로 자각할 때는 한 손에 단출하게 쥐어지는 돌의 비정형적인 형태와 가벼운 무게감인지도 모른다. 그 단단함을 손의 감각으로 느끼며 우리는 자신의 의도를 그 안으로 투영한다. 돌 하나를 두고 마음이 가는 돌 하나를 집어 다시 그 위에 올릴 때, 함께 올려 두는 마음만이 긴 안녕의 시간을 채운다. 전시 ≪흐르는 안녕의 자리≫의 두 작가는 돌탑 위에 염원의 마음을 올려 둔다. 그 작은 탑의 자리는 내게 닿고 네게로 향하여 흐르는 마음이 머무는 자리이다.
민정화는 돌탑을 보며 하나의 안녕의 지표로 삼는다. 돌탑을 쌓는 이의 앞선 마음이 쌓이고 다시 앞선 마음이 쌓여 그것을 어떤 모퉁이에서 마주했을 때, 그들이 만든 둥근 마음의 형상은 작가의 염원을 일깨운다. 그 염원을 만나며 그는 죽음에 닿아 있던 이를 떠올리고 소중한 위로를 얻는다.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열흘 밤의 꿈>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별 조각 떨어진 것을 주워다가 묘지 위에 살짝 얹었다. 별 조각은 둥글었다. 오랫동안 넓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동안에 모서리가 닳아 매끄러워진 거라고 생각했다.” 우리의 발원을 안고 먼 곳에서 날아와 닳고 동그래진 별은 마치 돌들과 같아 보인다. 그 둥근 형상들이 작가의 따스한 색채와 만나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다.
박자일에게 돌탑은 타인에게로 향하는 마음의 발로發露이다. 작가는 하나하나 돌을 쌓으며 그가 얹어 나가는 마음이 주변의 안녕에 닿아 평안을 그리기를 바란다. 돌탑은 예로부터 기원의 형식으로써 존재하였다. 돌을 쌓는 일을 반복하는 행위는 그만큼 발원의 마음이 깊어져 바라는 것에게로 나아가도록 만든다. 탑을 올리듯 한 줄 한 줄 흙을 쌓고, 흙을 쥐고 손을 비벼 동그란 구슬을 만들며 그는 소원한다. 손을 맞잡고 기도하는 우리를 만들고 탑의 개념을 빌려온 블록의 형태를 만들어내며 작가는 자신만의 기도의 형상을 도자의 언어로 풀어낸다. 그만의 형상이 타인에게 소원을 이뤄주는 마음의 평온한 모양으로 자리하기를 바라며 작가는 꾸준히 흙을 쌓아 나간다.
돌탑은 앞선 이와 뒤따르는 이가 함께 만들어내기에 과거의 행위가 현재로 이어져 미래로 나아가 하나의 맥락으로 작용하는 미완의 미학이다. 나와 타인의 교차점에서 삶의 안녕을 비는 동일한 마음들이 동일한 행위 아래 쌓인다. 돌탑의 자리는 늘 그곳이지만 그곳에 쌓인 염원은 우리의 마음을 타고 흐른다.
<흐르는 안녕의 자리>
민정화 Min Jeong Hwa
박자일 Park Ja Il
2024. 8. 23 - 9. 21
12:0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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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로2마길 12 2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