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의 형상


 여기 창이 하나 있다. 창 너머 가로수의 푸른 나뭇잎은 잔바람에 살랑이고 창가에 놓인 순백의 화병은 온화한 풍경에 순수를 더한다. 여기 빛이 있다. 맑은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려와 창과 건물과 바닥을 포근하게 안는 빛은 풍경의 시간에 또 다른 이야기를 담는다. 빛은 무한히 새로운 순간을 만들어내는 고요한 심상의 향연이다. 전시 《빛의 형상》의 두 작가는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풍요에 집중한다. 단일한 빛만 있다면 우리는 깊이감을 느낄 수 없다. 빛이 닿는 면과 닿지 않는 면이 있어 깊이가 만들어지고 작가에게 있어 이는 작품의 서사가 된다. 빛이 닿음으로써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고 빛을 담음으로써 그림자는 이야기를 완성한다.


 박윤지는 빛의 전언을 기록하는 자가 되어 시시각각 변하는 일상의 풍경을 포착하는 작업을 선보인다. 하얀 캔버스에 담긴 나뭇가지와 잎의 희미하고도 청량한 형상을 보고 있으면 바람에 부딪히는 여린 나무의 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다. 그가 그려낸 풍경은 우리에게 청각적 심상을 함께 불러일으킨다. 그 심상에 집중하다 보면 바람이 포근하게 불어와 우리의 몸에 닿는 듯하고 그가 그린 그곳, 그 시간을 함께하게 되는 것이다.

 작가는 틈틈이 물을 뿌려가며 분채 물감이 자연스럽게 장지에 스며들도록 한다. 종이가 젖고 마르는 동안에 반복되어 겹겹이 더해지는 안료는 시간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빛의 명도를 표현하여 부드러운 잔상을 그려낸다. 잔상은 외부의 자극이 사라진 후에 남는 모양이다. 작가는 인상적인 풍경의 한순간을 그대로 그려낸 듯하나 그것은 체험 이후 자신의 감각 안에서 기억되어 재해석한 마음의 형상이다. 그 앞에서 우리는 각자의 서정을 다정한 마음으로 꺼내어 보게 된다.



 진혜린은 순백의 도자 위에 반복적인 리듬을 얹어 균형과 안정으로 채운다. 말끔한 면의 틈 사이로 흙물이 나와 만들어진 부정형의 선은 흙의 물성이 가져오는 우연을 그만의 모양으로 만들어내는 정형의 산물이다. 이 부정형을 위한 정형의 균형 속에서 우리는 미묘한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1280도의 고온을 버티어낸 도자의 서사는 빛 아래에서 완성된다. 자연스럽게 튀어나온 선 위에 닿는 매끈한 빛과 그 뒤로 그려지는 옅은 그림자는 부드러운 명도 차를 만들어 맑은 표면에 심도를 더한다.

 작가는 그의 기물을 해가 닿는 곳에 둔다. 얇은 면 안에까지 부드럽게 빛이 스민다. 흙을 유려하게 관통하는 밝음은 도자에 청아한 분위기를 더하고 순백의 표면을 조각으로 하나하나 채우는 그의 단일한 노동의 자세도 빛 아래에서 간결해진다.

 

 누구에게나 각자의 빛이 있다. 빛은 모든 생물에게 실재적이고 구체적인 삶을 영위하도록 하는 에너지이지만 일상의 시간에서는 때로 무료한 순간을 환기하는 시각적 리듬이다. 같은 빛은 없다. 매 순간 변주하는 형상 속에서 우리는 새롭고도 우연한 풍경들을 채집하게 되고 그 안에 담기는 것은 변화하는 너와 나의 마음의 형상이다.

Shape of L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