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간의 사랑
원을 그려보자. 원을 그리고 다시 원을 하나 더 그릴 때, 그 사이에는 무엇이 있다고 말해야 할까. 원을 그리고자 하는 마음이 있을 것이다. 둥근 모양을 그려내는 것에 집중을 하거나 그리는 속도와 연필의 굵기에 신경을 쓰기도 하고 원이 무엇인지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결국 원을 그리는 마음으로 가득할 것이다.
선을 긋는다. 선을 긋고 다시 선을 그린다. 그려진 선은 구체적인 이미지로 남는다. 그 이미지가 사랑의 형상을 만들어 낼 때 선과 선 사이에는 무엇이 있는가. 사랑. 행간을 빼곡하게 채우는 사랑의 감정이 있을 것이다. 프로젝티파이의 전시 《행간의 사랑》은 작업하는 손과 손 사이에 채워진 마음을 담는다. 흙에 흙을 더하는 사이, 나무를 깎고 다시 깎는 그 사이에 이미 이야기가 가득하다.
김미래는 종이와 연필로 언어로 표현되지 않는 이미지와 감정을 그려낸다. 흑백의 드로잉은 A4 한 장에서 시작하여 이야기를 쌓고 쌓아 올려가며 하나의 커다란 덩어리를 만들어낸다. 따스하고 공상적인 요소를 품은 섬세하고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은 하나하나마다 구체적인 형태를 가지고 있지만 여러 스토리가 섞인 드로잉을 접했을 때는 응축된 감정선이 먼저 다가온다.
이번 전시에서 그는 아이들에 대한 사랑에 초점을 맞춘다. 일상의 반짝이고 소중한 순간들은 저 먼 동화 속 모험의 세계로 떠날 옷을 갖춰 입었다. 이야기를 평면에서 입체로 확장하는 나무 작업은 생활의 작은 순간들을 의미 있는 기억으로 자리 잡도록 하여 빼곡하게 채워진 사랑의 마음이 단단한 모양을 갖추도록 한다.
고승연은 흙을 쌓는다. 흙을 쌓고 다시 쌓는 과정을 반복하며 일상에 몰입하고 흙을 만지며 남겨지는 손자국들에 의미를 새긴다. 손자국으로 만들어진 울퉁불퉁한 도자의 틈에 안료를 넣고 지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면의 대비는 자유로운 행위의 흔적으로 남고 그의 일상은 흔적과 함께 명료해진다.
작가는 사랑에 집중한다. 그가 쌓아 올리는 흙이라는 캔버스는 사랑의 구체적인 형태를 갖추기도 하고 그리스 도기의 모양이 되기도 하며 드로잉이 더해져 그만의 정물화적인 서사를 담아낸다. 때로 부서진 조각에 다시 안료를 칠하여 재벌의 과정을 거치며 부서진 순간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마음처럼 되지 않았던 일상의 순간을 새롭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며 스스로의 삶을 가꾸어 나가는 사랑의 방식을 이야기한다.
브라운빌딩은 토템적 기능을 하도록 하는 형상과 메시지를 담은 다양한 오브제를 만들고 일상을 풍요롭게 하는 가구를 함께 선보이는 디자인 스튜디오이다. 브라운빌딩이라는 가상의 공간을 설정하여 그 안에 존재하는 인물들과 그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나 풍경에 관련된 물건들을 제작하며 변화에 따라 새롭고 발전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나무의 결을 그대로 그러낸 미감을 선보이는 정갈한 분위기의 가구는 때로 구슬 모양의 기둥과 만나 클래식하면서도 로맨틱한 무드를 자아낸다. 하나하나 손으로 나무를 자르고 다듬고 칠을 하며 일상의 시간들을 견고히 채워나가는 브라운빌딩이 만들어내는 단정하고 따스한 분위기는 우리의 일상에 위로와 안녕을 전한다.
이번 전시에서의 사랑은, 사랑을 말하기 위해 그리고 만든 것이 아니라 일상의 일들과 마음을 표현하다 보니 그것이 다만 사랑이 되었다. 사랑은 어디에나 있고 무엇에나 있다. 선과 선, 면과 면 그리고 마음과 마음 그 사이를 채우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자.